나는 어떤 생각 대기권 안에 살고 있는가
사람, 공간, 커뮤니티, 언어가 만들어내는 사고의 장 안에서 내 생각이 어떻게 좁아지고 넓어지는지 관찰합니다.

생각은 내 것이라고 느낀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친구를 만나면 갑자기 과거의 내가 다시 올라오고,
어떤 가족의 장 안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예전 역할로 돌아간다.
어떤 공간에 있으면 비교와 증명의 생각이 강해지고,
어떤 사람들과 있으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생각은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장(場)이 생각을 만든다.
[생각에도 대기권이 있다]
공기를 평소에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공기의 질이 달라지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
생각도 비슷하다.
어떤 장 안에 들어가면 생각이 좁아지고,
어떤 장 안에 들어가면 생각이 넓어진다.
어떤 장 안에서는 계속 방어적이 되고,
어떤 장 안에서는 더 용감하고 솔직한 사람이 된다.
이걸 생각 대기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가 속한 사람, 공간, 커뮤니티, 언어가 만들어내는 사고의 장.
내가 그 안에 있는 동안, 특정한 생각을 하게 되는 분위기.
[내가 경험한 생각 대기권]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들도, 진짜 천재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장 안에는 비교와 증명의 에너지가 강했다.
서로의 똑똑함이 확장의 방향보다 "누가 더 위에 있냐"를 확인하는 쪽으로 흘렀다.
작은 루머가 가십이 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재밌는 경험도 많았지만,
그 장 안에서 내 생각은 꽤 많이 소모됐다.
반대로, 어떤 장 안에서는 달랐다.
"이거 해야 되나, 저거 해야 되나"보다
"이걸 하기로 했으면, 어떻게 현실로 만들지"라는 질문이 더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같은 사람인데, 장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졌다.
[환경을 탓하는 게 아니다]
생각 대기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나쁜 환경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어떤 장 안에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면,
그 장이 나를 자동으로 움직인다.
의식하게 되면,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자책하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좋은 생각보다 좋은 환경이 먼저다]
좋은 생각을 하려고 의지로 버티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더 강력한 건 따로 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선택하는 것.
내가 더 자주 만날 사람,
내가 머물 공간,
내가 반복해서 듣게 될 언어.
이것들이 결국 내 생각의 질을 만든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장]
우리는 생각 대기권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생각 대기권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지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진다.
그래서 결국 이 질문까지 이어진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생각 대기권을 만드는 사람인가?
[이번 주에 꺼내볼 질문 하나]
지금 이 생각은 나를 확장시키고 있나,
아니면 익숙한 자리로 돌려보내고 있나?